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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프리덤가디언UFG 요란한 충돌 파편들

김종찬안보 2017. 8. 22.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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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8월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군사훈련은 시작전부터 국제분쟁의 충실한 소재였다.

기본적으로 중국이 제안한 쌍중단 즉, 북핵동결과 한미군사훈련중단의 시금석이 걸린 사인이라서 서로 신경전이 대단했다.

당사자인 북한은 거듭 강공책을 예고했고, 미국은 당연하다는 듯이 한미동맹과 동맹국 보호의 명분을 앞세웠다.

이에 대한 국제적 관심도가 점차 높아지자 북한의 공세도 요란스러웠고, 그 초기에 소위 '험한 말싸움'이 극에 달했다.

 

준전시상태란 특성으로 인해 서로간에 벌어지는 여론전의 기능이 앞서면서 내면의 정보는 언론에서 취급하지 못하고 오가는 선전이 언론보도의 주류를 이뤘다.

그 줄기를 잡은 서방 언론에 편승한 한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화된 발언을 근거로 훈련축소와 북한의 유연화를 성급히 단정하고, 더 나아가 북미 대화의 가능성에 여론을 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 한국 여론전의 줄기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이 기폭제였다. 

문 대통령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가 '방어적 성격의 한미합동군사훈련'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본 아사히신문은 '북 체제전복에 대응하는 기지 포격과 북한 포격 발사의 지휘소까지 파괴하는 훈련이며 작계 5015에 기반하고 있다'고 훈련 시작 단계에서 분석 보도했다.

이 완전한 차이는 을지훈련 중반을 넘어선 8월29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3발이 태평양을 향해 발사되면서 판가름이 났다.

문제는 더욱 커졌다.

발사 사건직후 한국 정부는 작계 5015를 은밀히 공개했다. 공개는 조선일보가 앞장섰다. NSC를 통한 공개내용은 '미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한국군이 주한미군과 직접 평양으로 치고 올라가 공습하는 작전' 개념이었다. 과거 2015년 6월부터 작계5027은 미 증원군 도착이후 공격이었다.

결국 북한으로 치고 올라가는 한미군사훈련이라는 점에 대대적 전환이 이미 입안된 상태에서 북한과 중국의 거친 반응이 앞서 있었고, 한국은 대통령이 '기본줄기는 방어'라는 원칙론에서 현실을 축소해 놓은 대응책에 불과한 모면용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북한의 도발이 있을 시 북한 평양 직공이라는 작계개념은 분명 방어용이지만, 실제 작전 내용을 공세적 초강도 공격으로 짜여졌다.

방어가 북한 궤멸을 노리는 군사작전이라는 점에서 중국과 북한이 단순히 '방어용 합동훈련'이라는 해명에 수긍할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었고, 이는 일본 언론의 앞선 실상 보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러시아 스푸트니크통신은 앞서 중국 잠수함탄도미사일SLMB 쥐랑3호가 1만1000km 미본토 사정거리의 시험 발사에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강경화 외무장관은 그런 긴장이 최고조인 을지훈련 당일 21일 국회 외무위에 '지난6일 한중외무회담서 왕이장관이 북에 도발중지 요구했다'고 말한 사실을 보고했고, 한국 언론들은 트럼프의 유화적 발언을 보도하면서 을지훈련이 축소돼 긴장이 완화되고 남북대화의 조짐이 보인다고 전망하는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다.

 

한국이 보도한 '미국 훈련 축소'에 대해 미 국방부장관은 '북한 때문이 아니다'고 밝혔지만, 한국은 북한 김정은이 '미국에 유화적 발언'을 근거로 이를 확정했다. 여기서 중국의 중재 가능성도 배제됐다.

긴장이 고조된 것은 오히려 완화조짐 가운데 미국이 대북 추가제재를 주도해 유엔안보리심의 거치지 않고 북 거래 의심 기업 10개 개인 6인을 전격적으로 재제대상이라고 그 명단을 발표한 직후이다. 

증국 즉각 유엔을 거치지 않아 절차위반이라고 반발했고, 러시아 제재대상 기업은 미국의 발표와 달리 무관하다고 주장하며 반격을 가했다.

한국은 이런 미국의 단독 추자제재 작업에 '긴밀협의'란 표현으로 한미동맹의 결실이란 입장을 고수해 공동작업이란 점을 과시했다.

 이것은 을지훈련의 기본 맥락을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의 공세적 지위 회복에 중국과 러시아가 동조하는 결과를 낳았다.

 

깅경화 외무장관은 앞서 미국과 세컨더리보이콧 긴밀히 협의 중 국회외무위서 보고해 미국 일방제재에 대한중국 러시아 반격에서 미국 들러리로 표적을 만들었다.

이 결과는 한중수교 25주년 기념을 급냉시키고 말았다. 직후 강 장관은 국회에서 큰 틀에 한중관계를 다시 짜겠다고 말해 전략 수정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