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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하마스 기습 전쟁 트럼프 바이든 해법 잇단 ‘퇴장’

김종찬안보 2023. 10. 1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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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rael Hamas surprise war, Trump Biden solution, successive ‘exits’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로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려던 바이든 행정부의 그랜드 바게인이 팔레스타인 기습 공격으로 좌절됐고, 이전 공화당 트럼프 체제에서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 영토에 팔레스타인 국가 건립으로 두 국가 해법 평화 공식을 팔레스타인이 거부함으로써 수십 년간의 미국 정책이 중동에서 퇴장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 체제에서 분쟁의 핵심인 예루살렘에 대해 도시에 대한 관할권의 범위를 명시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고 2018년에 미국 대사관을 그곳으로 옮겼고, 이는 오랫동안 동예루살렘에 대해 팔레스타인들이 국가의 수도 설정 요구를 좌절시켰다.

로이터는 하마스 공격의 배경으로 두 국가 해법’ ‘이스라엘 정착촌’ ‘예루살렘의 지위’ ‘560만명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분쟁의 핵심이라며, 트럼프 체제의 개입에서 초래된 예루살렘 동부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장은 국제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11일 밝혔다.

분쟁의 최대 쟁점인 정착촌에 대해 로이터는 대부분의 국가는 19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에 세워진 유대인 정착촌을 불법으로 간주한다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그 땅과 역사적, 성경적 유대를 인용해 지속적 확장으로 인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넘어 국제 사회 사이에서 가장 논쟁적인 문제 중 하나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이 집중하는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영토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세워지는 것을 구상하는 평화 공식인 두 국가 해법 지지 요구를 거부함으로써 수십 년간의 미국 정책을 뒤집었다고 로이터가 밝혔다.

두 국가 해법은 이스라엘과 함께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국가를 만드는 협정이며,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두 국가 해법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의 파괴를 목표로 천명했다.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에 대해 팔레스타인 국가가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않기 위해 비무장화를 요구했고, 이번 기습 공격에서 비밀리에 무장하고 공격 작전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9일의 하마스 기습 공격으로 시작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외부 세력을 끌어들이고 더 넓은 중동을 불안정하게 만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70년 간의 전쟁과 충돌에서 가장 비극적이다.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적대적 지역으로 간주하며 안보 요구와 팔레스타인의 국가 건설 열망간의 갈등이 70년 이행에서 더 극한 충돌로 나타났다.

이스라엘 건국은 데이비드 벤구리온이 1948514일 현대 이스라엘 국가 선포로 박해를 피해 도망친 유대인들을 위한 안전한 피난처 마련과 여러 세대에 걸쳐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땅에서 민족적 고향의 회귀에서 시작됐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나크바(Nakba, 재앙)이라며 자신들의 국가 수립의 희망이 차단됐다고 봤다.

이어진 전쟁에서 영국이 통치하던 팔레스타인 아랍 인구 중 절반인 약 70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피난을 가거나 집에서 쫓겨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으로 이전했다.

미국은 애초 동맹국 이스라엘을 옹호해 팔레스타인들을 집에서 쫓아냈다는 주장을 거부하고, 이스라엘 건국 다음 날 ‘5개 아랍 국가의 공격을 받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1949년 휴전 협정으로 전투가 중단됐으나 이후 공식적인 평화는 없다.

양측간 전쟁은 1967년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시리아에 선제공격을 가해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 요르단에서 점령한 아랍 동예루살렘,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점령했다.

1973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수에즈 운하와 골란 고원을 따라 이스라엘 진지를 공격하여 욤 키푸르 전쟁을 시작해 이스라엘은 3주 만에 두 군대를 후퇴시켰다.

이스라엘은 1982년 레바논을 침공했고 야세르 아라파트 휘하의 수천 명의 팔레스타인 전사들은 10주간의 포위 공격 끝에 바다로 대피했다.

2006년 레바논에서 헤즈볼라 무장세력이 이스라엘 군인 2명을 체포하고 이스라엘이 보복하면서 다시 전쟁이 발발했다.

2005년 이스라엘은 1967년 이집트에서 점령한 가자지구를 떠났다. 그러나 가자 지구는 2006, 2008, 2012, 2014, 2021년에 이스라엘의 공습과 팔레스타인의 로켓 발사와 관련된 주요 폭발이 집중됐고 양측의 국경 침공 사건으로 긴장이 고조됐다.

1987-1993년과 2000-05년 사이에 두 번의 팔레스타인 인티파다(봉기 폭동)가 있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하마스의 자살 폭탄 테러가 터졌다.

평화 조약은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서명하여 30년 간의 적대감 종식을 시도했다.

1993년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과 아라파트는 제한된 팔레스타인 자치에 관한 오슬로 협정에 서명했고, 이어서 1994년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미국 민주당이 시도한 2000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 에후드 바락 이스라엘 총리, 아라파트가 만났으나 최종 평화협정에 도달하지 못했다.

2002년 아랍 계획은 1967년 중동 전쟁에서 빼앗은 땅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을 위한 "정당한 해결책"을 제공하는 대가로 이스라엘이 모든 아랍 국가와 관계 정상적 체결을 제안했다.

미국이 시도한 평화 노력은 워싱턴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회담이 실패한 2014년 이후 교착 상태에 빠졌다.

공화당 트럼프 행정부는 팔레스타인을 펀드로 개발하는 거래를 시도했고, 팔레스타인인들은 차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거래를 보이콧했다.

거래는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영토에 팔레스타인 국가가 펀드로 투자 개발해 세우는 것으로, 평화 공식인 두 국가 해법 지지에 대한 거부로 나타났다.

예루살렘에 2018년 미국 대사관을 옮기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 트럼프의 거래 해법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슬람교도, 유대인, 기독교인들 모두에게서 신성한 장소들을 포함하는 동예루살렘에 대한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희망을 좌절시켜 분쟁을 내밀하게 키웠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대해 "분할할 수 없고 영원한 수도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하나, 실제 국제 사회는 예루살렘 동부에 대한 이스라엘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트럼프 체제의 실책은 첨예화된 예루살렘 분쟁 도시에 대해 평화안을 제시하며 관할권의 범위를 명시하지 않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그대로 인정하고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분쟁을 키웠다.

바이든 체제는 외교 확장 전략에서 수니파 사우디와 시아파 이란의 관계 정상화를 먼저 시도하고 이를 매개로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를 접근 방식에서 팔레스타인 바레인 등에 연결된 시아파 맹주인 이란을 배제하고 당사자인 팔레스타인이 외교 뒷전으로 밀리며 기습 공격의 명분을 제공했다.

팔레스타인 난민(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탈출한 사람들의 후손)은 약 540만명으로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이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지구 및 가자지구에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 외무부는 등록 된 난민의 약 절반이 무국적자이며 이중 다수가 사람들이 붐비는 캠프에 거주한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들은 오랫동안 난민들이 수백만 명의 후손들과 함께 돌아올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재정착은 국경 밖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